

‘목적없이 무용하며 아름다운 시간’이라.
정처 없이 인스타그램의 돋보기 속 세상을 들여다보다가 어느 사진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널찍한 통 유리창 너머로 서가가 보이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사진을 올린 계정은 ‘어쩌다 산책’이라는 이름을 가진 서점 겸 카페. 어쩌다 사게 된 책에 인생이 바뀌는 경험이라도 한 걸까? 아니면 어쩌다 나선 산책길에 서점을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셨을까, 산 책일까 산책일까 하는 궁금증 따위를 가지고 계정을 찾아봤다.


‘어쩌다 산책’은 자신들의 공간을 “몸과 마음의 산책을 위한 서점입니다. 산책 중에 떠오른 생각들을 잡아 두기 위해 메모를 하거나 공상의 시간을 보내듯 이 곳에서의 시간은 목적 없이 무용하며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목적 없이 무용하며 아름다운 시간이라… 온갖 유용과 효율을 따지는 세상에서 사는 내게 글자만으로도 어떤 평온함과 위로를 가져다주는 인상적인 문구였다. 계정의 피드는 공간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감각적인 사진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런 공간이라면 사진으로만 접하기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으로 전부 담아 내기가 힘들 만큼 멋진 공간일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서점’이라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이 공간을 기획하고 만들어낸 사람이 큐레이팅하는 서적들은 어떤 것들일지 호기심이 일었다.



사색의 정원이 있는 작은 앞마당
지나는 가게마다 최신 유행곡이 흘러나오고 친구와, 연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한 젊은이들의 활기가 가득한 대학로. ‘어쩌다 산책’은 젊음의 거리 대학로의 한 복판 지하에 조금은 비밀스럽게 자리해 있다. 분명 지도상에서 가리키는 건물 앞에 와 있는데, 어디에도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건물을 여기저기 돌아보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하얀 벽과 계단이 나오면서부터 지상과 지하가 마치 다른 세상처럼 나뉘어 졌다. 꽤 넓은 면적의 마당엔 갤러리에 전시된 현대미술 작품 같은 조형물과 나무가 한 그루 심어져 있다. 3면의 통유리창이 공간을 시원하게 드러내는데, 한 쪽엔 깊은 아우라를 뿜어내는 서점 공간이, 한쪽에는 정갈하고 단정한 느낌의 카페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점 쪽 유리벽에 새겨진 글자들이 말을 걸어온다. ‘12월의 산책, 끝과 시작’이라는 문구를 읽어내며 생각에 잠긴다. 이들이 이름 붙인 앞마당, 작고 고요한 ‘사색의 정원’ 벤치에 잠시 앉았다. 앙상하게 가지를 드러낸 단풍나무 밑에 바싹 마른 나뭇잎들이 무덤을 이뤘다. 서점에 들어서기도 전에 벌써 센치해진다.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
문을 열고 공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바깥과는 확연하게 다른 공기가 나를 감쌌다. 아주 조용한 공간이었다. 어쩌면 조용하다는 말보단 고요하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서점과 카페의 공간을 명확하게 구분해 둬서, 서점에서는 카페의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서점은 조도가 낮고, 무게감을 주는 묵직한 색감의 원목으로 된 서가로 이루어져 있다. 널찍한 테이블에 책을 한 권씩 선별해 그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 글을 인쇄해 함께 배치해 둔 것이 눈에 띄었다. 책이 빽빽하게 들어찬 서가가 아니어서일까, 진열해 둔 책들을 한 권, 한 권 더 꼼꼼하게 보게 됐다. 이를테면 작가의 이름 순이나 출판사와 같이 일반적인 서점의 서적 분류 기준을 따르지 않았고, 어떤 표시나 설명도 없어 찬찬히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서가를 훑어보며 책들의 분류 기준을 읽어내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단 한권의 책도 선반 위에 대충 올려져 있거나, 아무렇게나 꽂혀 있지 않았다.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이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그들의 마음을 아주 잘 읽어낼 줄 아는 사람들이 만든 공간이었다. 얼마간 서가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뭐든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것이 익숙해져 책도 오프라인에서 잘 사지 않았는데 이런 공간이라면 얼마든지 시간을 들여 자주 들르고 싶었다.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과는 확연히 다른, 조금은 낯선 책들이 가득하지만 그것이 신선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내 취향과 입맛에 맞는 책만 장바구니에 담아 집으로 배송 받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람들의 취향이 깃든 책이라면 함께 나누고 즐겨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감성을 자극하는 유료 포장 서비스마저 마음을 빼앗아 구매한 책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고운 종이봉투에 담긴 책 두 권을 들고 서점 문을 나서 계단을 오르는데, 어쩐지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든다.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다.

공식 인스타그램 : @uhjjuhdah_promenade
찾아가는 길 : 서울 종로구 동숭길 101 지하 1층
‘목적없이 무용하며 아름다운 시간’이라.
정처 없이 인스타그램의 돋보기 속 세상을 들여다보다가 어느 사진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널찍한 통 유리창 너머로 서가가 보이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사진을 올린 계정은 ‘어쩌다 산책’이라는 이름을 가진 서점 겸 카페. 어쩌다 사게 된 책에 인생이 바뀌는 경험이라도 한 걸까? 아니면 어쩌다 나선 산책길에 서점을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셨을까, 산 책일까 산책일까 하는 궁금증 따위를 가지고 계정을 찾아봤다.
‘어쩌다 산책’은 자신들의 공간을 “몸과 마음의 산책을 위한 서점입니다. 산책 중에 떠오른 생각들을 잡아 두기 위해 메모를 하거나 공상의 시간을 보내듯 이 곳에서의 시간은 목적 없이 무용하며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목적 없이 무용하며 아름다운 시간이라… 온갖 유용과 효율을 따지는 세상에서 사는 내게 글자만으로도 어떤 평온함과 위로를 가져다주는 인상적인 문구였다. 계정의 피드는 공간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감각적인 사진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런 공간이라면 사진으로만 접하기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으로 전부 담아 내기가 힘들 만큼 멋진 공간일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서점’이라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이 공간을 기획하고 만들어낸 사람이 큐레이팅하는 서적들은 어떤 것들일지 호기심이 일었다.
사색의 정원이 있는 작은 앞마당
지나는 가게마다 최신 유행곡이 흘러나오고 친구와, 연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한 젊은이들의 활기가 가득한 대학로. ‘어쩌다 산책’은 젊음의 거리 대학로의 한 복판 지하에 조금은 비밀스럽게 자리해 있다. 분명 지도상에서 가리키는 건물 앞에 와 있는데, 어디에도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건물을 여기저기 돌아보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하얀 벽과 계단이 나오면서부터 지상과 지하가 마치 다른 세상처럼 나뉘어 졌다. 꽤 넓은 면적의 마당엔 갤러리에 전시된 현대미술 작품 같은 조형물과 나무가 한 그루 심어져 있다. 3면의 통유리창이 공간을 시원하게 드러내는데, 한 쪽엔 깊은 아우라를 뿜어내는 서점 공간이, 한쪽에는 정갈하고 단정한 느낌의 카페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점 쪽 유리벽에 새겨진 글자들이 말을 걸어온다. ‘12월의 산책, 끝과 시작’이라는 문구를 읽어내며 생각에 잠긴다. 이들이 이름 붙인 앞마당, 작고 고요한 ‘사색의 정원’ 벤치에 잠시 앉았다. 앙상하게 가지를 드러낸 단풍나무 밑에 바싹 마른 나뭇잎들이 무덤을 이뤘다. 서점에 들어서기도 전에 벌써 센치해진다.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
문을 열고 공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바깥과는 확연하게 다른 공기가 나를 감쌌다. 아주 조용한 공간이었다. 어쩌면 조용하다는 말보단 고요하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서점과 카페의 공간을 명확하게 구분해 둬서, 서점에서는 카페의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서점은 조도가 낮고, 무게감을 주는 묵직한 색감의 원목으로 된 서가로 이루어져 있다. 널찍한 테이블에 책을 한 권씩 선별해 그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 글을 인쇄해 함께 배치해 둔 것이 눈에 띄었다. 책이 빽빽하게 들어찬 서가가 아니어서일까, 진열해 둔 책들을 한 권, 한 권 더 꼼꼼하게 보게 됐다. 이를테면 작가의 이름 순이나 출판사와 같이 일반적인 서점의 서적 분류 기준을 따르지 않았고, 어떤 표시나 설명도 없어 찬찬히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서가를 훑어보며 책들의 분류 기준을 읽어내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단 한권의 책도 선반 위에 대충 올려져 있거나, 아무렇게나 꽂혀 있지 않았다.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이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그들의 마음을 아주 잘 읽어낼 줄 아는 사람들이 만든 공간이었다. 얼마간 서가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뭐든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것이 익숙해져 책도 오프라인에서 잘 사지 않았는데 이런 공간이라면 얼마든지 시간을 들여 자주 들르고 싶었다.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과는 확연히 다른, 조금은 낯선 책들이 가득하지만 그것이 신선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내 취향과 입맛에 맞는 책만 장바구니에 담아 집으로 배송 받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람들의 취향이 깃든 책이라면 함께 나누고 즐겨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감성을 자극하는 유료 포장 서비스마저 마음을 빼앗아 구매한 책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고운 종이봉투에 담긴 책 두 권을 들고 서점 문을 나서 계단을 오르는데, 어쩐지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든다.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다.
공식 인스타그램 : @uhjjuhdah_promenade
찾아가는 길 : 서울 종로구 동숭길 101 지하 1층